행복할 권리는 혼자 버티라는 말이 아닙니다 — 제헌절에 다시 생각하는 돌봄의 헌법 : 미르웰케어
행복할 권리는 혼자 버티라는 말이 아닙니다
제헌절에 다시 생각하는 돌봄의 헌법, 공정한 기회, 그리고 미르웰케어가 꿈꾸는 AI 돌봄혁명
헌법의 약속이 돌봄을 지나 삶의 연결로 이어질 때, 행복할 권리는 비로소 현실이 됩니다.
제헌절이 되면 우리는 흔히 “헌법이 만들어진 날”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천천히 생각해 보면, 제헌절은 단지 법이 생긴 날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약속한 날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존엄하게 대할 것인가, 기회를 공정하게 나눌 것인가, 아픈 사람과 늙어가는 사람과 홀로 버티는 사람을 끝내 외면하지 않을 것인가. 저는 제헌절이 올 때마다 결국 이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됩니다.
미르웰케어가 돌봄을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돌봄은 누군가 특별히 착해서 베푸는 친절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사회가 함께 붙잡아 주는 힘이어야 합니다.
미르웰케어의 한 문장
행복할 권리는 “열심히 살아남아 보라”는 말이 아니라, 누구도 돌봄의 빈칸 때문에 삶에서 탈락하지 않게 하라는 사회의 약속입니다.
행복할 권리, 그런데 정말 모두에게 공정한가요?
대한민국 헌법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밝히고, 제11조는 평등을, 제34조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국가의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 의무를 규정합니다. 말하자면 우리 헌법은 이미 오래전에 “사람은 존엄해야 하고, 국가는 그 존엄이 무너지지 않도록 책임져야 한다”고 말해 둔 셈입니다. [대한민국헌법(국가법령정보센터)](https://www.law.go.kr/lsEfInfoP.do?lsiSeq=61603)
하지만 현실의 삶은 늘 묻습니다. 정말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느냐고요. 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거나, 돌봐줄 가족이 없거나, 나이가 들면서 몸이 약해졌거나, 청년인데도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면 “행복할 권리”는 종이 위의 문장보다 훨씬 멀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추구권을 조금 다르게 읽고 싶습니다. 행복할 권리는 단순히 “행복해질 자유”가 아니라,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잃지 않을 권리라고 말입니다.
돌봄은 시혜가 아니라, 삶이 꺾이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복지를 이야기할 때 무의식중에 “도와준다”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하지만 돌봄은 누군가를 아래에서 위로 끌어올리는 시혜의 언어가 아닙니다. 아이에게는 양육과 교육의 형태로, 아픈 사람에게는 치료와 회복의 형태로, 노인에게는 안전과 존엄의 형태로, 장애인에게는 접근성과 지원의 형태로 나타나는 삶의 기본 인프라에 가깝습니다.
돌봄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행복추구권도, 평등도, 인간다운 생활도 결국 “버틸 수 있는 사람만 버티는 구조”가 되어버립니다. 반대로 돌봄이 살아 있는 사회는 약한 사람을 끌고 가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끝까지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게 돕는 사회입니다.
왜 우리는 서로를 돌봐야 할까요?
여기서 저는 동학의 사인여천과 대동세상의 철학을 떠올립니다. 사람을 하늘처럼 여긴다는 말은 참 아름답지만, 동시에 아주 현실적인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사회, 약자를 내버려 두지 않는 사회, 타인의 아픔을 “남의 일”로만 보지 않는 사회가 결국 더 오래 갑니다.
흥미롭게도 진화생물학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로버트 트리버스의 상호 이타주의 이론은, 인간이 서로 돕는 행동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공동체와 개인 모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서로 돕는 사회가 결국 더 강한 사회라는 뜻입니다. [Robert L. Trivers, The Evolution of Reciprocal Altruism](https://greatergood.berkeley.edu/images/uploads/Trivers-EvolutionReciprocalAltruism.pdf)
그러니 돌봄은 약한 사람을 위한 특별대책이기 전에, 사실은 인간 사회 전체를 지탱해 온 오래된 생존의 지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AI 돌봄혁명은 감시가 아니라, 놓치지 않는 손이어야 합니다
이제 초고령사회에서 돌봄을 사람의 선의에만 맡기기는 어렵습니다. 누가 아픈지, 누가 고립되어 있는지, 누가 위험 신호를 보내는지 너무 늦게 알아차리는 사회는 결국 더 큰 고통과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됩니다.
그래서 AI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철학으로 AI를 쓰느냐입니다.
AI가 사람을 더 많이 감시하는 기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AI는 필요한 순간에 더 빨리 안부를 묻고, 돌봄 공백을 더 일찍 찾고, 의료와 복지와 지역사회를 더 잘 연결해 주는 조용한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권리와 권력 문제를 다루는 논의인 디지털 헌정주의도, 기술이 기본권을 약화시키지 말고 오히려 지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Ada Lovelace Institute(에이다 러브레이스 연구소)](https://www.adalovelaceinstitute.org/blog/digital-constitutionalism-rights-powers/)
이때 꼭 지켜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개인정보는 많이 모을수록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개인정보 보호법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목적에 필요한 범위에서 최소한의 개인정보만 수집해야 한다는 원칙을 두고 있습니다. 돌봄 AI도 이 원칙 위에 서야 합니다. 많이 아는 기술이 아니라, 덜 침해하면서 더 잘 돕는 기술이어야 합니다. [개인정보 보호법(국가법령정보센터)](https://www.law.go.kr/LSW/lsInfoP.do?lsId=011357&ancYnChk=0)
돌봄은 비용일까요, 아니면 더 큰 손실을 막는 투자일까요?
돌봄을 기본권처럼 말하면 늘 따라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 많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질문입니다. 물론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질문도 함께 해야 합니다. 돌봄 공백을 방치해서 병이 더 커지고, 고립이 더 깊어지고, 위기가 더 늦게 발견될 때 드는 사회적 비용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국회입법조사처는 초고령사회에서 의료와 돌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이제는 전달체계를 효율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같은 질의 서비스를 더 낮은 사회적 비용으로 유지하려면, 조기 발견과 예방, 연결의 효율, 통합적 설계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국회입법조사처](https://www.nars.go.kr/report/view.do?cmsCode=CM0165&brdSeq=47677)
결국 좋은 돌봄은 돈을 쓰는 일만이 아니라, 더 큰 고통과 더 큰 비용이 터지기 전에 막는 일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공공정책이 가져야 할 가장 인간적인 효율이라고 생각합니다.
동학과 오월의 정신은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돌봄 언어입니다
오월은 민주주의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국가기록원은 5·18민주화운동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속에서 이해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다시 붙들어야 할 것은 그 안에 있던 서로를 살리려 했던 마음입니다. [국가기록원 5·18 민주화운동](https://theme.archives.go.kr/next/518/viewMain.do)
저는 그 마음이 오늘의 돌봄국가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보고도 “개인의 문제”라고만 말하지 않는 사회, 가장 약한 사람을 기준으로 제도를 설계하는 사회, 기술이 빠를수록 더 따뜻해야 한다는 상식을 지키는 사회. 그것이 대동세상의 오늘식 표현일 것입니다.
미르웰케어가 제헌절에 붙들고 싶은 세 가지
- 행복할 권리는 잘난 사람만 누리는 결과가 아니라,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할 기회입니다.
- 건강권은 아프고 나서의 치료만이 아니라, 무너지기 전에 발견하고 연결받을 권리입니다.
- AI 돌봄혁명은 사람을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한 새로운 공공의 손입니다.
제헌절의 밤, 헌법을 삶의 언어로 바꾼다면
저는 제헌절을 맞아 헌법을 조금 더 생활의 언어로 번역해 보고 싶습니다.
행복할 권리란, 혼자만 강해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공정한 기회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 주는 사회입니다. 건강권이란, 병원 문 앞에 가는 권리만이 아니라 삶이 무너지기 전에 붙잡아 주는 손을 가질 권리입니다.
그리고 돌봄이란, 그 모든 권리를 현실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가장 따뜻한 제도 언어입니다.
미르웰케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사람을 하늘처럼 여기고, 가장 약한 사람의 일상을 기준으로 기술을 설계하며, 국가의 약속이 문장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삶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 저는 그것이 제헌절에 우리가 다시 읽어야 할 헌법의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자주 마음에 남는 질문
Q1. 돌봄을 왜 ‘기본권’처럼 말해야 하나요?
돌봄이 선택적 혜택으로 남아 있으면, 가장 절박한 사람일수록 제도 밖으로 밀려나기 쉽기 때문입니다. 돌봄을 권리의 언어로 읽을 때 비로소 국가는 “도와줄 수도 있음”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게 책임져야 함”의 자리로 이동하게 됩니다. [대한민국헌법(국가법령정보센터)](https://www.law.go.kr/lsEfInfoP.do?lsiSeq=61603)
Q2. AI가 돌봄에 들어오면 더 차가워지는 것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이 중요합니다. 사람을 감시하는 AI가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더 빨리 연결하고 더 덜 놓치는 AI가 되어야 합니다. 기술의 속도보다 인간의 존엄이 앞서야 합니다. [Ada Lovelace Institute(에이다 러브레이스 연구소)](https://www.adalovelaceinstitute.org/blog/digital-constitutionalism-rights-powers/)
Q3. 결국 복지는 돈 문제 아닌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돌봄을 늦게 해서 생기는 더 큰 의료비, 더 큰 고립, 더 큰 사회적 손실도 함께 계산해야 합니다. 좋은 돌봄은 지출이면서 동시에 예방이고, 보호이면서 동시에 미래 비용을 줄이는 투자이기도 합니다. [국회입법조사처](https://www.nars.go.kr/report/view.do?cmsCode=CM0165&brdSeq=47677)
참고한 자료
- 대한민국헌법(국가법령정보센터)
- 개인정보 보호법(국가법령정보센터)
- 국회입법조사처 – 초고령사회의 의료와 돌봄의 지속가능성
- 국가기록원 – 5·18 민주화운동
- Ada Lovelace Institute(에이다 러브레이스 연구소) – Digital Constitutionalism
- Robert L. Trivers – The Evolution of Reciprocal Altru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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