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안전학을 지상의 돌봄으로 — 미르웰케어를 시작하며

 

하늘의 안전학을 지상의 돌봄으로 — 미르웰케어를 시작하며

경선 석패, 그리고 멈춰 선 시간

2024년 봄, 당내 경선 결과가 발표되던 날의 공기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유독 무겁고 차가웠습니다. 진료실을 나와 국회에서 보낸 4년, 입법자로서 치열하게 달렸던 시간은 '석패'라는 두 글자 앞에 멈춰 섰습니다. 쉼 없이 돌던 엔진이 갑자기 꺼진 듯한 막막함 속에서, 저는 광주 월곡동 진료실의 익숙한 풍경 대신 오랫동안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마음속 활주로를 바라보았습니다. 1997년, 모니터 화면 속 시뮬레이터로 처음 비행기를 띄운 이래 27년 동안 품어온 하늘의 꿈이었습니다.

진료실에서 아이의 건강한 꿈을 지켜주던 주치의로서의 행복했던 순간


좌절의 한복판에서 저는 도망 대신 이륙을 선택했습니다. 전남 장성 황룡강 둔치의 활주로를 찾아 경량항공기 조종사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바람의 결을 읽고, 계기판의 수치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마침내 홀로 하늘에 올라 무사히 착륙하던 그 순간 — 저는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활주로는 한 번의 패배로 폐쇄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그 활주로는 새로운 방향으로 이륙할 기회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장성 황룡강 둔치에 위치한 한양항공 홍보물


칵핏에서 바라본 시스템의 무게

조종석(Cockpit)에 앉아 계기판을 바라보고 있으면, 25년 동안 청진기를 들고 환자를 만나던 월곡동 진료실의 순간들이 겹쳐 떠오릅니다. 두 자리는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충'이라는 단어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하늘에서는 아주 작은 방심, 수치 하나를 건너뛰는 행위가 곧바로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조종사는 비행 경력이 아무리 오래되어도 이륙 전 반드시 체크리스트를 한 줄 한 줄 소리 내어 읽으며 물리적으로 확인합니다. 3,000시간을 비행한 베테랑 조종사도 예외가 없습니다.

항공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이동 수단이 된 비결은 조종사 개인의 뛰어남이 아니라 시스템에 있습니다. 사고와 실수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비처벌적 안전보고 시스템'이 원인을 숨김없이 드러내게 하고, 드러난 원인은 표준화된 절차로 보완됩니다. 사람을 탓하는 대신 시스템을 고치는 것 — 그것이 하늘의 안전학입니다.

간절한 꿈이었던 비행기 조종사, 파일럿의 꿈을 이룬 2024년 여름경량항공기 조종석에서 바라본 계기판의 모습

지상의 돌봄에는 왜 체크리스트가 없는가

그 하늘의 원칙을 품고 지상으로 내려와 오늘의 건강돌봄 현장을 바라보면, 깊은 안타까움이 밀려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돌봄 현장은 여전히 개별 노동자의 헌신과 기억력에 의존하는, 계기판 없는 비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요양시설과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돌봄, 만성질환자의 투약 관리, 인수인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공백은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려지기 일쑤입니다. 조종사는 매 순간 계기판과 체크리스트의 도움을 받지만, 현장의 요양보호사와 돌봄 노동자들은 과도한 업무량과 피로 속에서 홀로 무거운 책임을 떠안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투약 시간과 건강 상태를 시스템이 아닌 '간병인의 기억력'에 맡겨두는 것은, 조종사에게 계기판 없이 감각만으로 야간 비행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장성에서 담양, 무등산을 돌아, 화순과 남평을 지나 비행하는 조종석 모습

사인여천(事人如天), 돌봄의 안전망을 짜다

비행기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닿으려면 세 가지가 하나로 맞물려야 합니다. 지상의 관제 시스템, 조종석의 기술, 그리고 표준화된 절차입니다. 복지 전달체계와 건강돌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하늘처럼 모신다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은 우리 공동체의 삶의 철학이자, 제가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온 원칙입니다. 그러나 이 정신은 마음가짐에만 머물러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빈틈없는 시스템을 짜는 기술로 구현될 때, 비로소 사인여천은 현실이 됩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무등산 정상의 풍경


미르웰케어(MirWellCare)를 시작하며

'미르'는 저의 이름 용(龍)의 순우리말이자, 현실의 간절한 꿈과 이루어가야 할 미래의 이상을 잇는 비전의 상징입니다. 그 이름을 딴 미르웰케어가 가려는 길은 명확합니다.

인공지능복지와 디지털 기술로 돌봄 대상자의 요구와 돌봄 노동자를 연결하고, 노동자의 피로를 관리하며, 위험을 선제적으로 감지하는 '돌봄의 계기판'을 만드는 것.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 복지'의 한계를 넘어, 복지가 필요한 곳에 맞춤형 복지의 따뜻한 손길이 먼저 닿는 '직권주의 복지'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의료와 복지가 분절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통합돌봄의 표준 체크리스트를 정립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헌신에만 기대는 돌봄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낙선이라는 활주로에서 솟구쳐 오르며 배운 하늘의 안전학. 그 시스템 혁신의 과제들을 이제 지상의 복지 현장에서 하나씩 실현해 가고자 합니다.

하늘의 안전학을 지상의 돌봄으로 가져오는 일 — 그것이 제가 다시 이륙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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